앤디 워홀 (Andy Warhol | Andrew Warhola Jr.) (1928.8.6 ~ 1987.2.22) 대중문화 속 이미지를 작품에 표현해낸 팝아트(pop art)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앤디워홀은 미술가이자, 출력물제작자, 영화제작자였다. 그는 상업적인 일러스트로 성공을 거둔 후 화가, 예술영화, 레코드프로듀서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대량 생산 방식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뉴욕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상품의 그림을 그리는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작품을 공동 생산하였다. 워홀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여자 구두, 유명인 뿐만 아니라 신문을 스크랩하여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현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워홀은 그의 작품에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표현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작품 속 일상적인 용품들은 대중에게 주위를 다시 돌아보게 했으며, 동시에 산업사회에서 상실된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워홀의 명성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그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마를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유명인 판화 작품과 캠벨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이 유명하다.
작품타입 아트프린트
그림크기 33.0cm X 48.0cm
액자크기 33.0cm X 48.0cm
액자종류 액자 선택 전
매트종류 매트 선택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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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가격 20,000원
액자가격 0원
매트가격 0원
합계가격 20,000원 ( 적립금 : 600원 )
앤디 워홀은 팝아트를 대표하는 멀티 아티스트이다. 도발적인 주제와 혁신적인 제작기법, 파격적인 언행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사진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다. 그는 슬로바키아 출신 이민자가정에서 태어나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후 뉴욕으로 이주해 화가, 아방가르드 영화, 레코드 프로듀서, 작가 등 전방위 활동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으며 동시대 최고의 유명인이 됐다. 1952년 드로잉 15작품으로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1956년 뉴욕 MoMA에서의 그룹전 등을 통해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 등 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정치인이나 헐리우드 스타, 거대 도시 문명 속 기물들을 소재로 대중화된 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직관하도록 예술품의 대량생산에 앞섰다. 강렬한 색상과 명도의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100개의 캠벨 수프캔), (1달러 지폐 200장), (금빛 마릴린 먼로) 등 극명한 현대의 이미지를 포착한 작품들은 이후 다른 작가들의 오마주로도 유명하다. '공장(The Factory)'이라는 작업실에서 사람들을 고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팝피즘 : 앤디 워홀의 60년대)와 (앤디 워홀의 철학)을 쓰며 작가로도 활동해 1970년 비틀즈와 함께 라이프 지가 선정한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예술사조와 상관없이 풍요로운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명쾌한 예술가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모든 것은 스스로를 반복한다. 모든 것은 반복일 뿐인데, 사람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놀랍다.” 앱솔루트 보드카, 캠벨 수프, 브릴로 박스, 마릴린 먼로. 이것들은 세상에 단 한 점만 존재하는 명화가 아니다. 앤디 워홀은 일상에 흔하게 널린 것들을 자신만의 ‘팩토리’ 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며 예술의 대량 생산을 가동했다. 스스로를 ‘세상의 거울’이라 칭하며 거울에 비친 세상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작품 세계의 확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끝내 미술의 전통적인 가치와 ‘작품의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전복시켰다. ‘어떠한 것’ 도 예술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 것이다.